53세 우리 아버지가 갑자기 공룡박사가 되신 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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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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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저씨 한 분이 저희 아버지께 쥬라기킹덤이라는 게임을 추천해드린 게 화근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심심풀이로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요.
지금 저희 집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시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어제 브라키오사우루스 보너스 터뜨렸는데 그 웅장함이란..."부터 시작이에요.
밥상에서도 계속 공룡 얘기만 나와요.
"벨로키랩터는 사실 칠면조만 했다더라" "익룡은 엄밀히 말하면 공룡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요.
게임 자체는 확실히 잘 만든 것 같더라고요.
화면도 화려하고 특히 티렉스가 등장할 때 그 박력이 정말 대단해요.
아버지 말씀으론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고 하세요.
그런데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어느 날 보니까 인터넷으로 공룡 다큐멘터리를 주문하셨더군요.
BBC에서 만든 거라며 자랑스럽게 보여주시면서 "이거 보면 게임이 얼마나 고증에 충실한지 알 수 있어"라고 하세요.
그리고 며칠 후엔 "파라사우롤로푸스는 머리에 있는 관으로 소리를 냈단다"라며 신기한 사실들을 계속 알려주시죠.
급기야 어제는 가족 단체 카톡방에 "다음 주말에 과천 과학관 공룡 체험전 가자"라는 메시지까지 올리셨어요.
솔직히 아버지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뭔가에 빠지시는 모습은 오랜만에 봐서 기분이 좋긴 해요.
덕분에 저도 어느새 중생대가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나뉜다는 걸 외우게 됐고요.
하지만 매번 식사 때마다 "스테고사우루스 등에 있는 가시는 꼬리 쪽에만 4개야"라는 설명을 듣는 건 좀 피곤해요.
아버지, 가끔은 날씨 얘기도 해주세요 ㅠㅠ